백가희 작가가 쓴 '뚜껑의 쓸모'라는 글을 읽었다. 그는 물건을 사면 뚜껑을 자주 잃어버리곤 했는데, 냄비 밥을 할 때 뚜껑의 중요성을 알게 됐다. 쌀이 제대로 익기 위해서 뜸을 들여야 하고, 이때 뚜껑을 덮고 열어보면 안된다. 뚜껑을 자주 열어보면 냄비로 한 밥이 제대로 익지 않는다. 끓어 넘칠 시간도, 익어갈 시간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가는 끊임없이 들여다보는 바람에 결국 아무것도 되지 못한 일들이 떠올렸고, 오래 잡고 있는 것만큼 중요한 건 그만 놓아주는 마음, 덮어주는 마음일 거라고 말한다.
아이돌 그룹 '카라'가 15주년을 맞이해 활동을 다시 시작했다. 멤버들이 함께 모여 출연한 '문명특급' 영상을 보면서 뭉클했다. 15년이란 시간의 두께만큼 많은 일을 겪었을텐데, 팬들을 위해 함께 모일 수 있다는 게 감동적이었다. 그들에게서 덮어주는 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함께 보낸 시간이 길어질수록, 우리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받는다.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해서, 각자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해서 그렇다. 상대방의 모자람을 덮어주는 마음을 갖고 싶다. 관계에 발생한 미세한 균열을 들춰내기보다 덮어주는 마음을 갖고 싶다. 내가 나의 모자람을 숨기고 싶은 만큼, 타인의 모자람도 덮어 줄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그렇게 서로 덮어주는 관계가 될 때 비로소 우린 함께 살 수 있다.